2011 SAVINA ART PROJECT 온라인 작가 공모전

박재환 Park Jae-hwan  


나는 인간의 <인식의 불안정성>에 대하여 탐구한다. 이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그 결과물은 항상 하나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는 변신(변형)이다. 이 변신은 형태의 변화에 따른 시각적인 변형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때로는 형태는 그대로지만 시각이나 관점의 변화에 의해, 보이지 않는 변형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변형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외양의 변화에 따른 1차적원인 변신이 아니라, 예를 들어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그리고 다시 나비로 이르는 것과 같은 형태적인 측면과 존재적인 측면의 내외에서 진화가 이루어지는 다차원적인 변신이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여러 방향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며,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에 비율의 변화를 주었을 때, 대상이 형태적 변화 없이, 어떤 존재적인 변화를 일으키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였다.

비율의 변화는 기존의 사물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지각을 이끌어낸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걸리버가 거인들이 사는 나라를 방문하여 거인들의 몸 위로 올라갔을 때, 거인들은 걸리버에게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라 산과 들판 같은 자연이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대상의 변형은 소설과 같은 가상 이미지 속에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나의 사물이나 공간이 막대한 수치의 비율 차이로 동시에 공존하는 현상은 현실에서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인간의 인식에 있다. 사실 비율이란 개념은 그 상대성으로 인해 가변적이고 불안정하기 마련인데, 인간의 시선은 하나의 비율로만 세상을 인지하기 때문에 부동적이다. 따라서 인간의 제한적인 시선으로 인해 비율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세상의 다면적인 모습을 놓칠 수밖에 없고, 이 놓친 면들의 자리에 인간은 환상을 만들어낸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나의 공간 위에 공존하는 <현실로써 인식되는 가시적인 범위>와 <실재하지만 마치 환상처럼 여겨지는 비가시적인 범위>의 경계 사이에서 서서 대상의 인식을 시도하였다.

내 방의 책상 위 한구석에는 언제부터인가 먹다 남은 빵 한 조각이 계속 놓여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비가 자주 내린 장마철 이후 그 빵 위에 곰팡이(moisissure*)가 피었다. 더러워진 빵을 버리려고 휴지통으로 가던 중, 문득 걸음을 멈추고 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이 부서지기 쉽고도 아름다운 세계에 매료되어,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콜럼버스 마냥 탐험을 시작하였다. 나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이라고 명명한 것처럼, 다른 비율의 시야를 빌려 재인식한 이 세계를 ERUSSISIOM이라고 이름 지었고, 나의 환상(fantasy)에 입각하여 신대륙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ERUSSISIOM은 미세한 조각 위에 세워진 거대한 조형물이 되었으며, 가시적인 기반 위에 만들어진 비가시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변화된 비율의 적용은 이 역설적인 공간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했고, 나는 하나의 공간 위에 공존하는 두 비율의 경계에 서서 보이지 않는 광대한 세상을 건축하였다. 옆에서 관찰하면서 나는 ERUSSISIOM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계속 건설해 나갔고, 현실을 바탕으로 구축된 가상의 구조물 ERUSSISIOM은 나를 통하여 현실의 실재물 moisissure에 힘을 가하여, 또 다른 <실재>를 생성해 나가고 있다.

의 시리즈 중 하나인 을 통해, 나는 매일 오후 6시에 작업의 진행을 위해 ERUSSISIOM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행위>가 ERUSSISIOM의 세계에서는 매일 일어나는 일식의 <현상>으로 발현하는 것을 영상화하였다. 즉, 비율의 변화를 통해 파생되는 현상은 단순한 크기의 변화에 머물지 않고 개념의 전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내 작업실의 ERUSSISIOM에서 일어났던 일식의 주기가 <시간>이라는 단위에 의해 결정되던 것에 반해, 전시장의 ERUSSISIOM에서는 일식의 주기가 전시장을 방문한 관람자의 <수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재미있다. 이 말은, 비율의 변화에 항상 수반되는 상대성은 대상과 시선이라는 이분적인 접근이 아니라, 대상과 시선에 공간을 더하고 그것들을 복수로 보는, 다원적인 상황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율의 상대성은 거대한 일식 현상의 주체인 천체에 <나>가 투영되는 환상을 경험하게 했다. 이로 보아 인간의 행동이라는 <사물>의 움직임은 자연 현상과 같은 <공간>의 변화로써 동시에 일어나고 있고, 일상의 상황 하나 하나에 부여하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즉, 흔히 말하는 수학적인 사차원 혹은 그 이상의 차원의 세계는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일상 생활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지만, 인간은 하나의 비율로만 세상을 바라보기에 못 보는 것이 아닐까. 그럼 인간이 동시에 두 개의 비율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혹은 셋 이상의 비율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광경을 보일까.



[Biography]



[Presentation]